[방콕&치앙마이] 정말 오랫만에 가족 여행

우리 엄마는 결혼하기 전 사립학교 선생님이셨댔다. 우리 아빠 성실성만큼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엄지척!이지만, 사회 초년생 사원 월급이 그리 풍족할 리 없을 터. 회사 사택에 살면서 엄마는 나와 동생을 낳고 키우고, 한 푼 두 푼 아껴가면서도 모든 시간을 함께 해줬다. 그 시절, 옆집이나 아랫집 윗집에 내 집인양 드나들며 아줌마, 친구, 동생들과 밥먹고 놀았던 기억은 여태 생생하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아빠 승진하실 무렵, 엄마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 원장님이 되었다. 부산과 기장 사이 구석진 동네인 반송을 떠나, 금정구로 이사했다. 하늘이 온통 우중충했던 전학날이 기억난다. 엄마가 손잡고 데려다주며, 여기 피아노 학원 앞에서 골목으로 들어와야 한다, 동네 길을 알려줬다. 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스카치테이프를 준비물로 사서 새 학교, 새 교실에 들어갔다. 2학년 9반이었다. 마치고서는 집에 어떻게 찾아가나, 걱정이 무색하게 할아버지가 우산 쓰고 마중나와 계셨다.


처음에는 어린이집 안쪽 방에서 네 식구 함께 생활했다. 얼마쯤 지나 신축 빌라로 이사했다. 우리 집이 될 줄도 모르고, 공사장에서 인부 아저씨가 피워 놓은 불가에서 놀던 기억이 난다. 그 불가 자리는 시멘트 발린 주차장이 되어, 동생과 나의 훌륭한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활약했다. 동생이랑 나는 많이도 싸웠(우)지만 함께 자라면서 좋은 놀이 친구였다. 그 빌라에서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참 행복했다. 나의 리즈시절이었다(;;). 집과 어린이집이 가까웠기에, 엄마도 우리도 수시로 오가며 붙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이사를 해서, 친구들과 떨어져 나 혼자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됐다. 공부하느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무엇보다 내 안의 사춘기 소녀와 싸우느라 힘들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도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은 시기의 나였다. 부모님에게 친절하고 착한 딸일 리 없었다. 결정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취업하면서 부모님과 점점 멀어졌다. 


졸업하고 일하다 보니 어느새 20대 후반이 됐다. 동생은 졸업반 인턴, 아버지는 최종 직급까지 승진하셨고 엄마는 20년 어린이집을 정리하며 인생의 새 막을 준비하게 됐다. 나는 마침 곧 백수가 될 예정인, 휴가가 10여 일 남은 1년 계약직이다. 올해 우리 가족은 잠깐의 여유를 맛보며 앞으로의 변화를 준비하게 될 것 같다. 각자 남은 휴가를 몰아쓰며 엄마의 해방(!)을 축하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와 한국의 중간지점으로 만만한(ㅎㅎ) 방콕을 선정했고, 약간씩의 저항을 극복하며 결국 만났다.


-- 치앙마이에서 길가다 문득 들어간, 어느 사원에서/ 해질녘 저녁 예불 종을 치는 스님 --


넷이서 방콕 5일, 엄마랑 나랑 둘이서 치앙마이 5일, 좋은 여행이었다. 나는 특히 치앙마이의 평화로움이 좋았다. 열 달 만에 만났는데 가족은 가족, 언제 떨어져있었나 싶게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죄송했다. 왜냐면 부모님한테 나는 좀 짜증도 잘 내고... 아무튼 ㅠㅠ 엄마는 오랫만에 딸도 만나고 외국에도 왔으니 즐겁고 반갑고 열심히셨는데 나는 아프리카에서 쌓은 지침의 게이지를 이기지 못하고 널부러지고만 싶었다. 아무튼 덕분에 부모님의 익숙함과 마사지의 편안함으로 마음의 평화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올 수 있었다.


-- 치앙마이 유명한 마사지샵에서, 이름값 확실히 하는 곳이었다 --



매일의 일상에 집중해서 일을 잘 처리하는 것도 좋은데, 때로는 한 발짝 떨어져 큰 그림을 볼 때가 필요하다. 열흘만에 돌아온 말라위는 그래도 몇 달간 집이었다고 익숙하면서도, 한편 한 발짝 멀어진 내 마음때문에 새롭기도 했다. 한 달이면 일이 정말로 끝나버려 나는 떠나고, 다시는 이렇게 돌아오지 않겠지 싶으니, 반겨주는 직원들 얼굴이 착잡하게 느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쉽기도 하고, 내가 무엇을 더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고.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여유로울 때가 오기 힘들고 또 지금이 우리 남은 삶 중에 가장 젊은 날임을 생각할 때,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게 만고 불변의 진리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족하고 퉁명스런 딸인 내가 한스럽다.


그래서, 올해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싶다. 내가 미국가기 전에, 동생이 취업하기 전에, 엄마가 아빠가 아직 가장 젊을 때. 여행지가 꼭 외국 어디 좋은 곳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하다못해 집 앞 도서관이 될 수도 있지만.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 혹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지라도 조용히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나도 엄마도 새로운 페이지를 준비하며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조용하게 내면이 더 강해지는 때를 보내야지. 치앙마이는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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