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윤상욱]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아프리카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책을 소개받고, 제목이 참 특이하다 생각했다. 아프리카에 아프리카가 없다면, 도대체 아프리카는 어디 있다는 말일까? 우리가, 내가 평소에 떠올렸던 아프리카의 이미지가, 실제의 아프리카와는 그렇게 다르다는 말일까?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에 대한 그 이미지랄 것도 실은 초원, 푸르른 하늘, 야생동물, 빈곤한 사람들,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질병, …, 열 손가락도 채 꼽지 못할 만큼 적었다. 전 세계 육지 면적의 20%를 차지한다는 큰 대륙, 인류의 발상지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이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해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이미지 중에도 벌써 절반 이상이 부정적인 것이었다. 이것만은 사실이었는지, 외교관 출신의 경험이 풍부한 저자는 아프리카가 겪어 온 고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서술했다. ‘무지해서 가난하고 가난해서 무지하다’는 소제목은, 오랜 역사를 가진 그 고통이, 슬프게도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제국주의 식민통치, 노예무역으로 얼룩진 어두운 역사는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다만 우리나라나 중국, 기타 동남아 국가들과 아프리카가 어떤 점에서 다르기에 이토록 발전의 기미를 보일 수 없는 것인가가 궁금했는데, 저자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설명을 잘 해주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 나라들은 1960년대에 독립했지만, 이후에도 건강한 민주주의 정치형태를 확립하지 못했다. 부족 중심의 배타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독재로 이어지고, 야당과 여당의 견제와 균형이 없어 내전이 잦고 부패가 만연했다. 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제국주의 열강의 착취를 비판하며 역사의 책임을 물었지만, 실상 그들 스스로도 지난날의 희생적 1차 산품 생산자, 가장 종속적인 경제지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쏟아지는 원조 또한 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심지어 전달이나 운용 과정에서의 착취와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는 점점 더 빈곤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고, 국제적으로 아프리카 회의론이 대두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는, 손 쓸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빈곤은 이제 역사 속 제국주의의 책임이라기보다,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와 자정능력이 없는 아프리카 그 자신의 문제가 됐다. 이에 아프리카의 미래는 더욱 어둡고 불안할 뿐이다.
빈곤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또 다른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에이즈의 창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영양이 부족해서 면역력이 저하된 아프리카인들은 에이즈에 더 쉽게 노출된다. 성병에 대한 편견 때문에, 에이즈 발병률이 높아질수록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식도 왜곡되었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문명에 뒤처져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할례에 대한 풍습 등을 볼 때, 지나치게 남성 우월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은 옳다. 운명론적인 토착 신앙 때문에 근대적 사고가 부족하고, 정치인의 우민화에 동원되고, 발전의 원동력을 잃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인을 미개하고 뒤떨어진 종족으로 치부하며 서구의 가치관을 그대로 ‘하사’하여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태도는 잘못됐다. 고질적인 빈곤을 해결하고 교육을 통해 아프리카인 스스로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다.
이렇듯 알수록 문제투성이인 아프리카에, 나는 과연 왜 가는 것일까? 나 하나의 개인적 소명이 유구한 역사의 거대한 땅덩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일까? 이 책을 읽기 전,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졌을 때에도 단지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 위해 1년의 여정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프리카가 지닌 문제의 크기와 복잡함을 직면하게 되었고, 내 소명과 역할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소명과 역할은 아프리카의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만큼 거창하지도, 획기적이지도 않다. 다만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할 뿐. 물론 선한 방향으로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아프리카의 미래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아프리카 그 자신이어야 한다. 나 하나의 개인, 수많은 선교인과 원조단체, 수혜를 받아 살아난 기아, 빈민, 덕분에 교육과정을 마친 아프리카의 학생들, 발전을 꿈꾸는 청년들이 모두 모여 또 하나의 아프리카가 되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프리카는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이미지로서의 아프리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스스로 그 이미지를 쇄신하며 잠재력을 발휘하게 될 때, 아프리카는 그 어디보다 빛나고 아름다운 대륙이 될 것이다. 더딘 걸음일지라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할 때, 아프리카의 봄은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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